그들이 머무른 자리는 남지나해이다. -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후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선포하였고 싱가폴에 머무르던 영국의 Z기동함대는 일본함대 수색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일본 함대를 가볍게 여기던 영국은 항공기의 지원없이 함대만으로 수색작전에 돌입하는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고... 역으로 영국함대를 수색하던 일본해군 항공대에 발각되어 그 당시 최고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영국은 자존심에 큰 타격을 입고 만다.
 
이 글은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몇년간 자료를 모아 취재한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의 최후에 대한 글중 일부이다.


1941년 12월 8일 17시 35분, Z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영국해군 기동부대는 일본 해군 함대를 수색하기 위해 싱가폴을 출항했다.
함대는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 구축함 테니도스, 일렉트라, 익스프레스와 호주해군의 뱀파이어로 구성되었다.
이틀 후 콴탄 근처의 말레이시아 동부해안에 도착했을 때 대공경보가 울렸다.
그것은 잊지못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

갑자기 일본 폭격기가 상공에 출현했다. 순양함 리펄스의 기록에는 하사관 한명이 대공견시병으로부터
"적 폭격기 21000피트에 출현" 이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함의 양현에 있던 기관포들이 일제히 집중사격을 했지만 명중 시킬 수 없는 높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폭격기들이 강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첫번째 타격 목표는 순양함 리펄스의 취약한 장갑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적극적인 회피기동에도 불구하고 리펄스는 폭탄의 파편을 뒤집어 쓰고 말았다. 250 Kg의 폭탄이 갑판위에 명중되었고 곧 공조실의 폭발로 이어졌다.

기관실의 기관병이었던 존 다이크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것은 공포의 순간이었다며 회상한다.

“바로 그 다음 경보음이 울렸어요. 나는 함상기의 연료공급을 지원 할때까지 불길속에 있었죠. 폭탄은 떨어지고… 내가 그곳을 떠나자 마자 폭탄이 폭발했어요.”

첫번째 공격으로 리펄스가 손상을 입었지만 곧 기능을 회복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기분나쁜 정적은 곧 깨지고 말았다. 더 많은 비행기가 나타난것이다. 이번은 고공 폭격기 같은 먼거리에서의 공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낮게 다가왔고 어뢰를 바다위에 떨궜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속도를 25노트로 증가시켰지만 뇌격기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5.25인치 보조함포는 연속사격의 모드로 세팅되어 뇌격기들을 요격했지만 애석하게도 소용이 없었다. 상갑판의 병사들은 공포속에서 마지막을 선사해줄 어뢰의 항적을 보고있었다. 탈출 할 수 도 없었다. 35000톤의 거대한 전함은 폭격기들속에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11도로 기울어져 속도는 15노트로 떨어졌고 양쪽의 조타기어와 주 전기장치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이것은 더 이상 항해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더 심상치 않은일은 5.25인치 포의 전원공급기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것이었다.

일본군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더 이상 싸울수 없다는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 건조된지 25년된 리펄스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폭격기들의 속도와 민첩함은 대공포인 REG-Woods로 소용이 없었다.

”나는 우리 배를 향해 저고도로 날아오는 비행기를 봤죠. 그것들은 마치 스핏파이어(영국의 전투기) 같아보였습니다."

함장 터넌트는 셀수없는 어뢰공격에서 회피 할 수 있는 우수한 항해술 가지고 있었다.
그의 대단한 기술은 수병이었던 테드 메트류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우리 함장은 우리가 어디서나 어뢰를 수색하는데 만전을 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32000톤의 전투함을 순양함 보다는 구축함에 가깝게 훈련시켰죠. 우리의 위상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겠죠."

일본군의 집요함은 리펄스의 좌현과 중앙에서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을 때 응징당했다. 이 공격을 마치 무시하는듯이 리펄스의 대공포병들은 두대의 적기를 떨어뜨렸으며 이내 더욱 더 많은 적기의 명중을 성공하였다. 이때 우현에서는 구명보트를 내리기 시작했다. 리펄스는 여전히 원할한 운용을하며 공격받은 프린스 오프 웨일즈를 향해 움직여 지원하기 시작했다.

테넌트 함장은 적 공격이 있을때 이미 19개의 어뢰를 탐색해 냈다. 프린스오브 웨일즈에 근접하는 3대의 뇌격기가 대공조준기에 들어왔고 아주 가까워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뢰 탄두를 조준하여 격추시켰다.

리펄스는 이 3중의 공격을 막아내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세발의 어뢰가 배밑으로 사라졌고 갑자기 거대한 물기둥이 좌현에서 솟아올랐다. 갑작스럽게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전투는 끝났다. 리벌스는 패배한 것이다. 3분만에 513명의 승무원과 함께 리펄스는 침몰하고 말았다.

프린스오브 웨일즈는 ”최후의 일격”으로 전복되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함선의 상태는 절망적이 되었다. 최초의 어뢰가 명중한 이후로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다른 공격에 계속 손상을 입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는 기울어져 갔고 생존할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당시 18세의 승무원이었던 통신병 빌존스는 많은 승무원과 마찬가지로 그보다 먼저 있었던 1941년 5월의 전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새로 취역한 전함 후드가 불행하게 침몰된 일에 대한 기억이었다.(후드는 독일전함 비스마르크의 함포에 침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이 배의 깊숙히 있는 통신실에 들어오기 시작할때까지 이게 무슨일인지 몰랐습니다. 즉시 우린 통신실을 비울것과 갑판으로 철수를 명령받았습니다. 오랫동안 기어오른 끝에 우린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황폐한 모습이었죠. 우리는 부상당한 사람들을 의무실로 옮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배위에 눕혀졌고 그들의 상처는 너무 심해서 생명을 유지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았습니다.…”

셀수 없는 어뢰가 명중된 후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비참상 상태가 되었다. 아마도 18000톤 가량의 물이 선체에 스며 들어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금있으면 침몰할것이 확실했다. 고공 폭격기로부터 마지막의 한방이 날아왔다.
5.15인치 포의 견시병이었던 앨런 맥키버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는 대공포의 열려있던 문앞에 서 있었어요. 갑자기 세번의 굉장한 폭발이 우리 환풍구 사이에서 일어났고 나는 환풍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곧 깨닳았죠. 그 폭발의 위력은 포탑을 포이(砲耳:포신을 포가에 받쳐놓는 원통형 돌출부)에서 날려버렸죠. 만일 내가 주 환풍구에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 오늘 이자리에 있지 못했을겁니다."

맥키버의 머리는 많이 찢어졌고 피를 많이 흘렸다. 하사관 크라우더는 트랩을 통해 그를 HMS 익스프레스로 옮겨서 안전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를 본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 그가 침몰전에 구조 됐는지 알지 못합니다."

13시 20분 프린스오브웨일즈는 급속하게 기울어져 전복된 후 327명의 승무원과 함께 침몰되었다. 필사적인 구조가 진행되었다. 호위 구축함들은 눈물어린 파멸의 현장에서 수백명을 구조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단 두시간동안의 비통한 전투에서 영국해군의 자존심은 일본의 함상폭격기들에 의해 깨져버리고 말았다. 840명 이상이 전사하였고 그 후에 발생된 싱가폴 전투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해군에서 일어난 가장 큰 재난임이 틀림없다.

내가 이 전투에 대해 연구를 하는 몇 년동안 나는 전 세계의 기관이나 개인과 의견을 교환했다. 그 중 한명이 런던에 일본무관으로 있는 마에타니 일등 육좌이다. 나는 그에게 만일 리펄스와 프린스오브 웨일즈를 격침시킨 구 일본해군의 카노야전대와 미호로전대에 아직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의 견해를 듣고 싶으니 조사해 달라고 편지를 썼다.

몇주가 지난 후 하루키이키 대위라는 카노야 항공대 소속이었던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답장을 보내왔다. 많은 편지가 오가면서 나는 점점 이키씨의 정직함을 느끼게 되었고 일본이 전쟁시 적에게 보였던 잔인함에 대한 반감이 어느정도 누그러지게 되었다. 그는 1941년 12월 11일 전투가 있었던 해역의 상공을 혼자 정찰 비행하면서 두송이의 꽃을 떨어뜨렸다고 했다.

나는 그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나에겐 충격을 주었다. 하나는 영국의 포탄을 맞고 전사한 카노야 항공대의 대원을 위한 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전투에서 전사한 모든 영국병사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방어하던 영국병사들에게 감동을 받았고 일본 항공전대의 비행사들은 영국병사들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올해 5월 22일 리펄스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 재단이 '플리머스'에 세워졌다. 즐거움과 웃음이 있었지만 나는 그 배들이 사라져간 승무원들의 기억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른 자리는 남지나해(南中國海)이다.

by 무는개 | 2008/03/19 11:35 | 태평양전쟁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bitedog.egloos.com/tb/16450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